헤드폰 시장의 흐름 탓일까, 최근 몇 달, 혹은 몇 년간 리뷰를 하며 직접 청음 해본 헤드폰과 이어폰들은 대부분 밀폐형이었다.
밀폐형은 헤드폰의 소재나 이어컵의 모양에 따라 음색이나 음장감이 달라진다는 특징과, 야외에서도 부담 없이 사용하기에 적합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전천후로 사용하기 위한 블루투스 헤드폰이 트렌드인 만큼, 밀폐형이 오픈형보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는 것도 당연한 현상이다.
반면 개방형, 즉 오픈형은 내부 울림으로 인한 음의 왜곡이 적고, 소리를 내기 위한 필수 요소인 공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풍부한 소리를 낸다는 특징으로 마니아층 사이에서 꾸준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리고 주 타겟층이 오디오 마니아들인 만큼 가격대도 주로 높은 편인데, 오늘 이야기할 젠하이저 HD 700 역시 출고 당시엔 150만원 정도로 책정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출시된 지 5년 이상 지나면서 60만원대로 구입할 수 있게 되었고, 고음질 헤드폰에 발을 들여보기를 원하는 일반 소비자들도 엄두를 한 번쯤 내볼까 하고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젠하이저 HD 700을 가장 대중적인 앰프인 스마트폰과 한번 사용해보기로 했다. V30와 함께 들어본 젠하이저 HD 700은 어떤 퍼포먼스를 들려줬을까?
젠하이저 HD 700는 본래 스마트폰이나 mp3를 위해 만들어진 헤드폰이 아니다. 임피던스도 150옴에 이르기 때문에 기본 플러그도 6.3mm 플러그가 적용되었다.
이 젠하이저 HD 700을 100% 즐기기 위해서는 고성능의 앰프가 있어야겠지만, 오늘은 앞서 말했듯 일반 대중들을 위한 리뷰이기 때문에 어댑터를 연결해서 V30와 함께 청음해봤다.
V30의 사운드 성능에 대한 평가는 이미 충분히 검증되었는데, 일각에서는 100만원 대 DAP를 넘어서는 사용성을 제공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V30와 젠하이저 HD 700이 만들어낸 소리는 어떠했을까? 포스팅을 위해 직접 들어본 음악은 라라랜드 OST인 epilogue와 another day of sun, 허각의 사월의 눈, Ed Sheeran의 Shape of you다.
젠하이저 HD 700의 음색적 특징 중 한 가지는 고음부가 굉장히 강렬하다는 점인데, 그 점을 이 곡을 통해서 제대로 느꼈다.
트럼펫을 포함한 고음역대 악기들의 소리가 너무 강하게, 혹은 날카롭게 들렸기 때문인데, 이전에는 그저 전체적으로 어우러진 악기들 중 하나였다면, 이 헤드폰으로 들을 때는 보컬이라도 된 양 고음 사운드가 가까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피아노 선율도 음색은 아름답게 들리긴 했지만 음역대에 따라 양감이 달라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물론 저음부의 베이스도 탄탄했고, 중음 역시 양감이 부족하지 않았지만, 다른 헤드폰과 달리 고음의 힘도 강하다 보니 차이점을 분명하게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에필로그와 마찬가지로 고음 악기의 존재감이 다른 헤드폰으로 들을 때보다 선명하게 들렸는데, 이번에는 과하지 않았다. 고음이 날카로우면서도 듣기는 거북하지 않은 독특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각각의 악기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사운드를 내는 듯한 공간감을 이끌어내면서도, 울림으로 왜곡되지 않은 적절한 잔향으로 각 음들이 조화를 이뤘다.
보컬의 사운드는 음악 자체의 성향 때문인지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사람의 목소리도 악기 중 하나라고 느껴질 정도.
젠하이저 HD 700을 사용해 들어본 another day of sun은 전체적으로 음악이 풍성하다는 느낌과 영화 속의 연출처럼 탁 트인 느낌을 제대로 즐기게 해주었다.
젠하이저 HD 700의 고음이 아닌 다른 음색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던 곡인데, 일단 보컬 사운드의 양감이 충분하게 느껴졌다.
도입 부분에 반주 없이 보컬의 목소리만 들릴 때는 마치 바로 앞에서 보컬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느껴지다가, 반주가 하나씩 들리면서는 무대가 점점 넓어지는 듯한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저음 반주의 가벼운 울림을 생생하면서도 차분하게 들려준 점도 칭찬해주고 싶다.
메인 비트가 흘러나오기 전 5초와 그 이후의 공간이 전혀 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젠하이저 HD 700은 음의 느낌에 따라 머릿속에 그려지는 공간을 아예 바꿔버리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다른 헤드폰으로도 이 노래의 타격감을 즐길 수 있었지만, 젠하이저 HD 700은 오픈형인 만큼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느낌을 전달했다.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는데, 다만 탁 트인 듯한 타격감은 분명 플러스 요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 모바일 스마트 기기와 사용하기엔 부담스러웠던 케이블과 어댑터
✎ 메탈릭한 디자인과 달리 쿠션감은 상당히 우수했다.
✎ 소리가 그대로 밖으로 들리긴 하지만, 착용했을 때 크게 들리더라도 사실 헤드폰에서 나오는 소리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옆에서 듣기에 시끄럽지는 않다.
✎ 별도로 분리할 수 있지만, 그 길이가 어마무시한 젠하이저 HD 700의 케이블
1) 오버이어 타입으로, 이어 컵 부분이 워낙 크다 보니 귀에 부담은 전혀 없다. 헤어밴드의 쿠션도 충분해서 머리에도 압박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개인적으로 귀 주변에서 푹신하다는 느낌보다 조금 단단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2) 스마트폰과 사용하기에는 케이블이 너무 길다. 정말 정말 너무 길다.
3) 어댑터를 연결한 젠하이저 HD 700의 플러그는 어마무시하다. 주머니에 넣기에는 부담스럽다 못해 어딘가 찌를 것만 같은 크기다.
4) 무게는 가볍지만 접이식이 적용되지 않아서 휴대성이 좋지 않다. 그리고 실내 전용 제품이기 때문에, 튼튼해 보이는 디자인과 달리 파손되지 않도록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5) 고음이 시원시원하다. 날카로우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신기한 음색을 들려주는데, 트럼펫처럼 과한 고음이 들어간 음악을 들을 때는 고음을 줄여주기 위한 EQ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극고음부의 피치는 EQ로도 조절하기 어렵다.
6) 다른 헤드폰에 비해 고음이 강하다는 것이지, 저음과 중음도 탄탄하고 양감이 풍부하다.
7) 마치 스피커를 작게 틀어놓은 것처럼 밖에도 소리가 그대로 들리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사용하기에는 괜찮지만, 공공장소에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8) 물론 헤드폰을 착용하고 듣는 사운드는 스피커를 귀에 대고 듣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젠하이저의 섬세하고 노련한 기술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는 부분이다.
솔직하게 평가하자면 젠하이저 HD 700은 사운드를 떠나서 디자인적인 요소를 볼 때 스마트폰과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동할 때나 조용한 곳에서나 자유롭게 고음질 사운드를 즐기기 원한다면 젠하이저 모멘텀 같은 다른 선택지가 좋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150만원대인 HD800과 달리 가성비가 좋아지기도 했고, 또 V30와 함께 사용하더라도 오픈형 헤드폰의 맛은 충분히 느껴볼 수 있었다.
따라서 만약 제대로 된 오디오 장비들을 갖추기 이전에 고음질 오픈형 헤드폰을 먼저 구입할 계획이라면, HD 700과 V30로 오픈형 헤드폰의 맛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시도인 것 같다. - MACGUY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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