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4일 금요일

미지의 땅 모스크바를 가다. #3 러시아의 가전 시장과 OLED TV의 번인 이슈


처음 모스크바 공항에서 구입한 유심의 데이터 속도를 보고 결심했었다. ‘이곳의 모바일 마켓을 둘러봐야겠구나.’ 그러한 결심은 행동으로 옮겨졌고, 기대 이상의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러시아 모바일 시장 탐방기 (바로가기)

그런데 모바일 마켓이 포함되어 있는 종합 전자제품 매장에 들어갔을 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사실 TV 매장이었다. 수많은 TV 디스플레이들이 줄지어서 정신 사납게 번쩍번쩍 거리고 있었기 때문. 심지어 가는 매장마다 그랬다.



   

마케팅 전략이라면 성공한 것 같다. 현장에서 지인에게 들은 말로는, 러시아 사람들은 듬성듬성 있는 것보다 한 군데 몰아놓고 한눈에 보고 비교한 다음 고르는 걸 대체로 선호한다고 한다. 팩트는 아닐 수도 있지만, 아마 그럴 것 같다. 러시아 매장의 마케팅부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진열해 둔 것일 테니까.

그리고 전체 글로벌 TV시장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파이가 꽤나 크다는 말도 들었다. 현재는 8~10위권을 왔다갔다 하는 정도지만 5년전만 해도 2~3위권에 오르기도 했다고.

러시아 시장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며, 모바일 시장과 마찬가지로 TV시장도 탐방을 시작했다.




스마트폰도 그렇고, TV도 그렇고, 러시아는 전자제품과 관련해서 자체 브랜드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있더라도 시장에서 비중이 상당히 적은 편.

그래서 글자만 러시아어로 설명되어 있지 정작 TV 매장에서 볼 수 있는 TV들은 다들 하이마트에서 볼 수 있는 그 TV들이었다.



그리고 러시아 TV시장에서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브랜드가 바로 엘지와 삼성이었다. 현지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러시아 TV시장에서 삼성의 점유율이 35% 이상이고, LG의 점유율이 약 30%에 이르는 정도라고 한다. 다른 외국도 상황이 비슷하겠지만, 러시아의 TV시장은 그야말로 한국 브랜드 대잔치다.

최근 OLED 시장으로 뛰어든 소니도 10%를 조금 웃도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조금 나이대가 있는 분들은 여전히 일본 제품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나머지 점유율은 파나소닉이나 샤오미 같은 여러 브랜드들이 나눠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2500불 이상의 프리미엄 TV시장은 가히 엘지, 삼성, 소니 세 브랜드의 독점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엘지가 25% 이상, 소니가 20% 이상, 삼성이 약 50%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대신 OLED TV와 QLED TV를 비교하자면 엘지, 소니 등 OLED TV 진영의 비중이 조금 더 앞서는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체발광 OLED TV를 선호하는 국내와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만약 자신의 집에 있는 TV가 스마트 TV라면 집에서 TV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러시아인들은 약 85%가 스마트 TV를 스마트 TV 답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15% 정도만 단순 TV 프로그램 시청을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고.

그리고 TV의 게임 모드를 활성화하여 게임을 즐기는 시간은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게임 강국이라 자부하는 한국이 5위 정도라는데 말이다.


   


게임 모드에 대한 열정이 프리미엄 TV 디스플레이에 대한 선호도에도 영향을 주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갤럭시노트8이나 V30의 올웨이즈 온 디스플레이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OLED의 특성상 한 화면을 계속 띄워두면 그 부분에서 번인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러한 환경을 지양한다.



만약 OLED TV로 게임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몇 년 혹은 몇 개월간 같은 게임을 하다 보면 자신의 캐릭터의 체력이 얼마나 남은 건지 파악할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LG의 OLED TV 같은 경우는 보상회로를 통해 번인 현상을 완화하는 기술을 품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나을지 모르지만, 세월 앞에서는 장사 없다. 보상회로의 원리 자체가 그다지 달갑지 않기도 하고.

게다가 이곳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현상도 발견하게 되었다.


✎ 주의를 사로잡는 모스크바의 흔한 TV 마케팅

✎ 이자율이 높은 러시아에서는 무이자 할부가 큰 메리트가 있다고 한다.

✎ E-태그(디스플레이 속 정보 안내창)를 주로 활용했던 러시아의 TV 매장들

✎ 어딜가나 프리미엄 TV의 색감은 눈길을 끌었다.

✎ 버튼 하나로 일반 UHD와 QLED를 비교할 수 있도록 해둔 장치



러시아의 TV 진열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아, 물론 어지러운 진열 방식을 다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해당 TV 모델의 정보를 종이에 인쇄해서 TV 옆에 붙여두는 국내와 달리, 러시아의 메이저 매장들은 TV 화면 자체에 해당 TV와 관련된 정보를 띄워 두었다.

TV 주변이 깔끔하면서도 정보가 한눈에 들어와서, 개인적으로 괜찮은 아이디어다 싶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을 사용할 수 없는 TV 라인업이 있었으니, 바로 OLED TV들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긴 하다. 아무리 번인을 완화한다 하더라도 OLED TV가 장시간 고정되어 있는 화면을 견뎌내는 것도 어렵고, 집에서 TV를 시청하는 소비자들이 통신사 로고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고정된 화면을 계속 틀어 놓을 일도 잘 없을 테니, 제조사 입장에서 굳이 마이너스인 마케팅 방식을 적용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넘어가려 했으나, 두 눈으로 봐버렸다. OLED TV의 번인 현상을.




사실 국내는 전시 상품의 교체가 자주 일어나는 편이라 소비자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러시아는 조금 다른가 싶었다. 2017년 모델인 소니 OLED TV 화면에 분명 노란색 자동차 사진이 나오는데, 중간에는 초록색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단색 화면으로 전환해달라고 요청해서 확인해봤는데, 생각보다 OLED TV의 번인 문제는 심각했다.



출시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LG OLED TV 화면의 중앙에서도 LG 자체 화질 영상물의 흔적인 LG 로고를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그 TV에서 LG 로고가 장시간 나오는 영상은 거의 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OLED TV를 고민 중인 사람이라면 전시장 제품은 절대 사지 말아야겠다. 살 거라면 전시 시작 날짜를 확인하자. 


 
직원의 말로는, 전시장에서의 3개월이 일반 가정에서는 1년, 전시장에서의 1년은 가정에서 약 3년 정도에 해당한다고 한다. 러시아의 경우 TV 교체 주기가 5-7년이었지만 최근에는 4-6년으로 감소했다는데, 결국 OLED TV의 경우는 3년이 지난 1-3년간은 번인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거라는 소리다.

이처럼 러시아의 TV 시장을 깊이있게 살펴본 결과, 게임을 사랑하는 러시아인들이 OLED TV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번인 현상은 비단 러시아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닐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국내나 다른 국가에서도 그런 번인 이슈가 발생하고 있는지 한번 자세하게 알아봐야겠다. - MACGUY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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